답답하다 감정

익숙한 모든 것들과 작별하고 싶다. 24살이 되기까지 "못난 나"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준 모든 것들 말이다. 도망가서 날 찾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리고 싶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혐오 생각정리

혼자 있을 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는 하찮은 감각으로만 알 수 있다. 선풍기 소리, 땀이 나는 느낌, 몸의 무게, 발바닥, 손가락, 그 외에는 공허함, 또 공허함. 혼자만의 힘으론 나 자신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소통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려고 인터넷, 글, TV 화면, 카톡 대화 따위의 것들로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작동시켜도 흔히 느껴지는 건 열등감으로 인한 불쾌함 뿐. 외부 세계는 언제나 나를 더 못난 인간으로 만든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존재였던 나를 열등감으로 가득 채워서 괴로움에 시달리게 한다. 나보다 못난 인간을 봤을 땐 "저 사람보다 내가 낫구나."하는 우월감, 반대로 잘난 인간을 봤을 땐 "나는 절대로 저들같이 될 수 없겠지."하는 좌절감. 둘 중의 하나뿐이다. 그 외의 감정은 느낄 수 없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와 연결을 하려 하지만 이런 괴로움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못 느끼는 고립 상태가 더 나을 거 같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공허하다.
요즘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못하는 이유는 이런 비교의식 때문이다. TV를 볼 땐 TV 속의 인물과, 책을 읽을 땐 책 속의 인물과 나를 비교한다. 그리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던 상태에서 열등감만이 추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직 열등감에 의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열등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런 건 성공할 예정인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나는 남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재차 말하지만 나는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른다. 외부와의 소통으로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건 비교로만 만들어진 것들이라서 아주 처참한 모습이다. 누구보다 노력하지 않는 나, 누구보다 날씬하지 못한 나, 누구보다 똑똑하지 못한 나, 누구보다 친구가 없는 나. 아주 비참하고 한심한 나. 앞으로도 계속 비참하고 한심한 모습일 나. 아무 가치도 없는 쓰레기. 남에게 민폐만 주는 나. 수준 낮은 나.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나의 이 끔찍한 내면세계를 남들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아야 내가 원하는 것(사람들의 지지, 호감,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지금까지 나는 그걸 모르고 모든 걸 드러낸 다음 남들에게서 이해와 해답을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건 남들의 무시, 경멸, 혐오같이 감당하기 버거운 것들뿐이었다. 간혹 이런 나에 대해 잘 알면서도 호감을 보이는 인간들은 모두 나보다도 못한 한심한 군상들이었다. 열등한 인간들을 피하고 나보다 나은 인간들과 무사히 친분을 쌓기 위해선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나는 실제의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전혀 몰라야 한다.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처음부터 다른 사람인 것처럼. 

깨지지 않는 가면을 만들어야 한다.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다 원래의 나와는 다르게. 

어찌 됐든 이 못난 육체부터 탈출하는 게 순서다. 

성공적인 노력을 위해선 어떻게? 정신건강

양심, 죄책감, 후회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친사회적인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이익과 물질적 가치에 초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난 양심도 없나? -> 지금 이 행동을 하면 내게 불이익이 있을텐데?
미안하니까 그러지 말아야지. -> 피해가 오니까 그러지 말아야지.
누구를 위해서 ~를 해야겠다. -> ~를 하면 내게 큰 보상이 온다.
나도 행복하고 싶다. -> 나도 재미있고 싶다.
의무적으로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 효율적으로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예뻐야 한다는 강박, 그 이유 생각정리

유명한 사람들이 부럽다. 쏟아지는 관심에 지쳐서 피곤할 때도 있겠지만 관심받고 싶은 욕구에 목마르진 않을 테니까. 내가 우울할 때마다 사람들이 위로해줬으면 좋겠고, 좋은 일을 할 때마다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일반인인 내가 그 욕구를 충분히 채우기 위해선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족을 제외한 타인에게 가장 쉽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건 외모였다. 다들 외모가 다는 아니라고 하지만 연애에서도 외모는 예선, 성격은 본선이라고 한다. 무조건 예선에 합격을 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거니까 외모가 다는 아닐지라도 분명 중요한 요인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말은 결국엔 다라는 소리 같기도?) 꼭 연애할 때뿐이 아니라 관심받기 위해선 항상 외모가 중요했다. 예쁘지 않으면 관심받을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외모 외에 다른 장점이 있더라도 예쁜 사람보다 훨씬 덜 주목받을 거고.
아예 처음부터 외모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전혀 없게 태어났다면 다른 돌파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만약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또 못나게 태어난 걸 자책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세계 최고 미녀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평균 이상만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엄청난 미인이 아니어도, 예쁘장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꽤 호의적이니까. 나는 남의 평가를 받아야만 나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자존감이란 말은 이해조차 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겠는데 내가 어떻게 스스로 나를 사랑한다는 거지? 어떤 사람이든간에 상관없이 사랑하라는 건가? 그래도 적어도 누군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뭔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사랑해? 뭔지 알게 된다 해도 이대로는 나쁜 소리를 더 많이 들을 텐데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자존감을 키우라는 거지? 그게 쉬운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다수의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 이라고 하면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기 쉬울 거다. "넌 사랑스러운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나도 언젠간 내가 사랑스럽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거다. 
세월이 지나 늙게 되면 어쩔 거냐고? 그건 나중 문제다. 싱그러운 젊음을 잃게 돼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지혜도 우선은 밖에 나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배우기 유리한 거 아닌가. 모든 걸 잃었을 때 의연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강한 정신력도 이렇게 정체된 상태로 나만의 세계에만 갇혀선 얻기 힘들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이 나쁜 걸까? 생각정리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옳은 일이란 건 확신할 수 있다. 이건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은 일 한다는 걸 자꾸 남들에게 보여서 "수아는 이렇게 좋은 일하는 멋진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또 옳지 않은 일이란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순적이라고 느껴졌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선을 행하는 거 말이다. 
그런데 선을 행하는 의도가 비록 내가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서일지라도 내가 한 일이 결과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덜 힘들게 해준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나도 내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존경하던 인물의 안 좋은 뒷면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고 뒤돌아선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오지 여행가인 한비야.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책에다가 구라를 너무 많이 친 게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내가 이런 한비야의 행적을 비판하자 이모가 그러셨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 책을 보고 월드비전에 후원하기 시작했다."라고. 한비야가 비록 구라쟁이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모는 그 책에 마음이 움직이셔서 후원을 시작하신 거다. 우리 이모 같은 사람 많을 거다. 여행 작가로선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본인이 구호활동을 열심히 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 건 또 잘한 일이다. 한가지 면만 보고 그 사람이 한 모든 일들을 다 나쁘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건 흑백논리니까.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익숙한 내겐 중용이 중요하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 했다고 해서 내가 한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그만둘 필요 없고 망설일 필요도 없고 그냥 계속하면 되는 거다. 무조건 위선이라고 단정 짓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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